동아시아에서의 문명론과 국민국가: 20세기 전반기의 담론 구조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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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0-0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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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문명과 대비시켜 동양문명을 자각한 것은 문명관의 일대 전환을 감내해야 했던 19세기 후반부터였다.
그런데 31운동이 일어나자 민족각성이 솟구치고 새로운 문화운동에 관심갖는 가운데 동시대 중국(China)과 日本(일본) 지식인 사회의 동서문명론의 effect 아래 문명론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reaction 은 그가 일원적인 문명론에 입각해 문명은 단계적으로 일직선적인 발전을 경과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대체로 동아세아의 전통과 서구문명의 ‘우성접합’이란 방식으로 문명을 개조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잡았지만, 이런 절충적 방식으로는 사회적 합의를 얻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우세한 문명론에 압도당하기 쉬었다.
20년대 잡지에 발표된 몇 안되는 문명론 가운데 비교적 체계적인 글이 북여동곡이란 필명에 의한 것인데(『개벽』, 1922.11), 이 글은 기본적으로 위에서 본 양수명의 논지를 따르고 있을 정도로 동아시아 논의 effect을 받고 있다아 그는 중국(China)과 日本(일본)의 동서문명론에 대해 논평하면서 중국(China)지식인은 동양문화에 반감을 갖고 있으나, 日本(일본)지식인은 동양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호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서양인과 동등하다는 느낄 수 있어서 동양문화옹호론을 전개한다고 說明(설명) 했다. 따라서 日本(일본)의 조선 강점 이후는 이러한 유의 문명 담론이 당연시되었을 터이므로 문명론 자체가 큰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실제로 日本(일본)의 성공사례(instance)를 따르다가 급기야는 직접 지도를 받아 문명을 개조한다는 친일적 개화론에 지배적 담론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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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문명과 대비시켜 동양문명을 자각한 것은 문명관의 일대 전환을 감내해야 했던 19세기 후반부터였다.
북여동곡이란 필명만으로는 그의 사상적 성향을 알 수 없어 당시 조선의 지적 지형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가늠할 길 없지만 이 글만으로 무리하게라도 판단한다면, 20년대 한국의 문…(省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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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트/인문사회
동아시아에서의 문명론과 국민국가: 20세기 전반기의 담론 구조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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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문명과 대비시켜 동양문명을 자각한 것은 문명관의 일대 전환을 감내해야 했던 19세기 후반부터였다. 그래서 양계초의 동서문명융합론도 ‘객기’에 불과한 것으로 비판하면서, 조선은 안분과 금욕의 동양문화를 배척하고 합리적인 서양문화를 이어받아야 마땅하며 서양문화 수용운동이 어느 정도 결실되었을 때에나 동서문명융합을 논의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